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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자녀 교육법

마태복음 5:1-12

by 책 읽어주는 아빠 2024. 4. 30.

누가 복을 받는 사람인가?

 

사람은 예수님을 믿기가 힘들어요. 사람의 죄를 가진 본성으로는 예수님을 믿기가 불가능해요. 그래서 여기에 모인 저와 여러분은 특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이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어요. 기독교 제외한 모든 종교는 사람의 노력으로 신에게 가서, 그 신의 은총을 얻는 원리에요. 사람이 신에게 찾아 간다는 거예요. 어떻게요? 사람의 노력으로요. 돈을 많이 내거나, 훈련을 많이 받거나, 금욕을 많이 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많이 돕는 사람이 신에게 갈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나 여기에는 큰 문제가 있어요. 얼마나 많이 노력을 해야 되죠? 그 기준이 없어요. 신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알 수가 없는 거죠. 그러니 누가 신에게 갔는지, 누가 신의 은총을 받았는지 알 수 없어요.

 

성경에 나오는 유대교도 똑같아요. 누가복음 10: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이렇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하나님으로부터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죠. 이런 사람을 펠라기우스주의자(Pelagianist)라고 불러요.

 

하지만 기독교는 그렇지 않아요. 기독교는 사람이 신에게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신이 사람에게 찾아오는 원리에요. 사람에게 찾아온 신은 예수님이고, 그 예수님을 믿어야 사람은 구원을 받게 되요. 그러나 죄를 가진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불가능해요. 이것이 왜 불가능하냐 하면 사람의 본성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기독교 안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을 이해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어요. 그래서 많이 실패했어요.

 

그래.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 하지만 사람도 노력을 해야 신을 만족시킬 수 있어. “믿음+사람의 노력으로 구원을 받는 거야.” 이런 법칙을 만든 곳이 로마 카톨릭이에요. 그럼 믿음과 노력이 잘 섞일까요? 절대 섞일 수 없어요. 결국 사람의 노력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게 되죠. 그래서 로마 카톨릭에서는 성인이라는 제도를 만들었어요. 어떻게 해야 성인이 될 수 있을까요? 일반적인 노력이 아닌, 초월적인 노력을 해야 성인이 될 수 있어요. 성인을 우리 식으로 말하면 성도에요. 영어로 saint에요. 로마 카톨릭에서 우리 장로교를 보면 성도라는 이 말은 정신 나간 말이에요. “어떻게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감히 성도(saint)가 될 수 있어? 그러니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장로교는 가짜야.이런 사람을 세미팔라기우스주의자(semi-Pelagianist)라고 불러요. 반은 믿음, 반은 노력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거죠.

 

사람의 노력이 아니야. 오직 예수님만 믿어야 구원을 받아. 하지만 그 믿음은 사람의 의지로 믿는 거야. 내가 열심히 믿으려고 해야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서 믿는 것이 아니야. 그럼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잖아.” 이 법칙을 만든 사람은 알미니우스라는 사람이에요. 이 법칙을 믿는 사람들을 알미니안주의자(arminian)라고 불러요. 이 법칙은 어느 특정 교단의 교리가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많은 성도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어요. “모든 성도는 알미니안주의자로 시작해서 칼빈주의자로 죽는다.처음에는 내가 잘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생각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깨닫게 된다는 뜻이에요. 뭘 깨달을까요?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 내가 사는 것, 교회의 성도로 계속 남아 있는 것 등등.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바울의 고백과 똑같은 고백을 모든 성도는 하게 된다는 거예요. 언제요?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요. 하나님이 나의 인생에서 은혜를 주신 사실을 경험하고 난 뒤에요.

 

제가 이런 설명을 왜 하냐 하면, 오늘 본문 말씀은 교회 안의 성도가 가장 많이 잘못 해석하는 내용이기 때문이에요. 어떻게 잘못 해석할까요? 3~10절까지는 8복 내용이죠. 우리는 이 내용을 보면 이렇게 생각해요. “예수님을 믿는 우리 성도는 심령이 가난해야 되고, 애통해야 되고, 온유해야 돼. 그래야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을 수 있어.성도인 내가 복 받을 자격이 되어야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거죠.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한 질문과 똑같죠. “내가 무엇을 하여야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너의 심령이 가난해야 복을 받을 수 있어, 너의 마음이 청결해야 복을 받을 수 있어.성경을 이렇게 이해하면 안되요. 복 받을 자격을 나에게 두면 예수님이 서있을 자리가 없어요. 그럼 기독교가 아니에요. 이 세상 종교가 되어 버리는 거예요. 펠라기우스주의자가 되어 버려요.

 

성경을 이렇게 보면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가 아니라 경쟁하는 공동체가 되요. “누가 더 잘하나? 누구의 믿음이 더 좋나? 누가 더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나? 누구의 마음이 더 청결한가?성경이 말하는 성도가 갖추어야 할 덕목들이 변질되어 성도의 자랑의 목록이 되어 버리는 거예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늘 우리는 무엇인가를 해야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게 되요. 그래서 그 무엇인가를 하지 못하면 나는 교회에 필요 없는 사람이 되는 거죠. 그럼 교회에는 누가 필요할까요? 그 무엇을 잘하는 사람만 필요하겠죠. 보여주는 것을 잘하는 연예인이나 상품을 잘 파는 영업 사원, 무엇인가를 이루는 사업가가 교회에서 제일 필요한 사람이 되겠죠. 목사? 필요 없어요. 믿음이 있는 성도? 필요 없어요. 왜요? 못하잖아요.

 

여러분,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어요? 마태복음 4: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예수님은 빛을 비추기 위해 오셨어요. 그럼 저와 여러분은 뭐에요? 우리는 흑암에 앉은 백성이에요. 예수님은 흑암에 앉아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빛을 비추러 이 땅에 오신 거예요. 여러분이 빛을 비추는게 아니에요. 내가 빛을 비추지 못해서 필요 없는 성도로 여기거나, 우리 베트남팀이 전도하지 못해서 잘 못하는 팀으로 여기지 마세요. 예수님이 슬퍼하세요.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을 구원시키려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어요. 그리고 부활하셨어요. 그런 예수님을 믿어 내가 구원받았는데, 구원받은 내가 필요 없는 성도에요? 예수님의 죽음이 그 정도로 쓸모없는 죽임일까요? 아니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마귀의 머리를 박살낸 사건이에요. 그래서 지금 우리는 마귀의 지배가 아닌 예수님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고, 이 세상의 진짜 왕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있어요. 저와 여러분은 왕의 자녀에요. 왕의 자녀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왕의 자녀에요.

 

8복에 나오는 사람은 여러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 한 부류의 사람을 설명하고 있어요. 바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은 성도에요. 그 성도는 천국을 가졌고(3, 10),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9), 하나님을 만나서(8) 모든 신령한 것들을 받았어요(4, 5, 6, 7). 이것이 성도가 받은 복이에요. 누구 때문에요? 예수님 때문에요. 11-12‘[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어떻게 복을 받는다고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다고요. 그러니 믿음이 연약한 성도는 8복을 이렇게 봐야 되요. 3예수님 때문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절은요? ‘예수님 때문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10절까지 다 똑같죠. 예수님 때문에 복을 받는 거예요. 내가 복 받을 조건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에요. 내가 복 받을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복을 내가 받게 되는 거예요.

 

나를 믿는게 아니에요. 나의 노력을 믿으면 안되요. 얼마나 노력해야 되요? 얼마나 많이 노력을 해야 신을 만족시킬 수 있나요? 내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어야죠. 나의 노력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믿어야 되요.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믿어야 되요.

 

그러나 처음에도 설명했듯이 사람의 본성으로는 믿음이 불가능해요. 왠지 아세요? 왜 펠라기우스주의, 세미펠라기우스주의, 알미니안주의가 나온지 아세요? 사람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내가 무엇을 하면 그것이 나를 구원할 줄 아는 거예요. 너무나도 어리석죠. 내가 무엇을 하면 그 대가로 하나님으로부터 뭔가를 받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아니에요. 이건 틀렸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하나님은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거예요. 우리가 우리의 죄를 용서할 수 없으니,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거라고요.

 

이 사실을 믿는 성도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어요. 교회 일을 할 수 있어요. 복 받을 조건으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서 일을 하는 거죠. 우리가 밖에 가서 계란을 나눠준 이유도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 하는 일이지, 내가 복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세요? 믿는 자는 이미 하나님이 주신 복을 다 받았어요. 예수님이 8복 말씀을 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받은 복을 우리는 누리면 되요. 다른 무엇을 더 하려고 하지 마세요. 우리는 천국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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