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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자녀 교육법

엄마의 실수들 2. 순수한 엄마

by 책 읽어주는 아빠 2022. 10. 15.

순수한 엄마

엄마와 아기

 

여자의 마음은 여리다. 부드럽고, 섬세하다. 이런 마음을 가진 여자가 사회에서 거친 풍파를 겪으면서 내면은 단단해지고 거칠어진다. 마치 군대를 다녀온 남자가 사나이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여자가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면 자궁 속에 아기를 무려 10달을 품게 된다. 첫 번째 자녀를 품고 출산을 하면 엄마의 마음은 또다시 여려지기 마련이다. 이 험한 사회에서 어린 아기를 지켜줘야 할 의무를 느끼고, 때 묻지 않는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겨나게 된다. 이 때 엄마는 엄마의 역할 및 도리에 대해서 배우고, 자식을 자식으로 대하는 법을 배우면 좋은데 여린 마음에 이 아기에게 잘해줘야지. 나의 나쁜 감정을 주지 말아야지. 늘 사랑하고 아껴줘야지.”라고 다짐을 하게 된다. 자신이 방패가 되어 자녀를 보호해주고, 지켜주려는 마음이 커지기 마련이다.

 

 

물론 이런 모성애는 당연히 생겨나는 것이고 이런 애정으로 자녀는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랑이 잘못된 사랑이면 어떨까? 뒤틀린 사랑이면 자녀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게 될까?

 

 

엄마의 잘못된 사랑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엄마가 순수한 마음으로만 자녀를 바라볼 경우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엄마니까 오직 잘해주기만 하면 된다고 여기는 마음이다. 이런 사랑은 어릴 때는 과잉 사랑이 되고, 크면 버릇없는 아이를 만들기 쉽다. 왜 그럴까? 아이가 자랄수록 사람이 가지고 있는 죄성이 겉으로 드러나게 된다. 거짓말, 심술, 시기, 감정 폭발, 우기기 등등 수많은 부정적인 감정을 밖으로 표출한다. 이것이 혼자만의 표출이 되면 모르겠지만 친구, 선생님, 부모에게까지 표출시켜 나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그 최고점은 중학교 2학년 때이다. 그러면 이 때 엄마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가만히 내버려두면 될까? 아니다. 절대 아니다. 이런 버릇은 고쳐야 한다. 어릴 때 벌과 매로 쉽게 고칠 버릇을 가만히 놔두면 80이 되어서도 그 버릇은 고치기 어렵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옛말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자녀의 나쁜 습성들을 보고도, 자신과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을 알면서도 순수한 엄마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참으면 언젠가는 괜찮아지겠지. 내가 참고 자녀에게 잘 대해주면 이 아이도 나중에 깨닫고 잘하겠지.이런 순수한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성격이 있는 분들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지만 실제로 이런 엄마들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자녀 훈육을 해도 이런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엄마들도 있을 것이다.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잘못된 사랑이다.

 

 

엄마들 중에 자녀가 청소년기가 지날 때 후회하는 엄마들을 많이 봤다. 무슨 후회냐 하면 대부분 그렇게 사랑해 줬는데 내 말은 안 들어.”라고 후회한다. 아빠는 딱딱하게 대하고, 꾸중하고, 군대식으로 대하였고, 엄마인 나는 부드럽게, 사랑스럽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한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니 자신의 말은 귓등으로 듣는 것 같고, 아빠가 말하면 바로 실천을 한다. 그러니 후회스럽고, 자녀가 밉기까지 한다.

 

 

자녀는 왜 너그럽게 대해줬던 엄마의 말은 듣지 않을까? 엄마의 훈련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잘하면 상을 받고, 못하면 벌을 받아야 한다. 운동 선수가 시합에서 이겼는데 아무런 상도 없다. 그러면 시합을 준비하고, 부상을 입고, 시간과 돈을 쓴 것이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범죄자가 불법으로 잘못을 했다. 그런데 아무도 이 범죄자에게 벌을 내리지 않으면 이 범죄자의 불법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상과 벌이 주는 효과이다. 자녀가 어릴 때부터 부모는 이 훈련을 시켜야 한다. 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 혹은 매를 주는 것이다. 이런 훈련을 받은 자녀는 어떻게 자랄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아는 아이가 될 것이다. 식당에서 놀고, 놀이터에서 떼쓰고, 규칙을 어기는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이런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이런 아이의 부모는 오직 자신의 기분 내키는 대로 자녀에게 상과 벌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자녀는 부모를 따라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게 마련이다.

 

 

엄마가 엄마의 도리를 하지 않으면, 자식은 자식의 도리를 하지 않는다.

 

 

자녀가 사랑스럽고, 지켜줘야 하고, 엄마이기 때문에 잘해줘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잘해줘야 하는 기준이 있어야 잘해줘도 잘해준 티가 난다. 마냥 잘해주고, 마냥 참고, 마냥 기다리는 것은 기준이 없는 방황에 불과하다. 이런 기준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요즘은 기본적으로 도덕을 배우지 않는다. 그러니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아이들의 버릇은 점점 없어진다. 이 글을 보는 분들은 그런 도덕을 배웠고, 알고 있을까? 부부 사이의 도리, 부모와 자식 간의 도리가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 그 도리에 대해서 성경이 말하고 있는 내용을 알기를 바란다.

 

 

가정 구성원의 도리

아내: 예수님께 복종하듯 남편에게 복종하라. 아내의 머리는 남편이다.

남편: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교회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남편은 아내를 이렇게 사랑하라.

자녀: 부모에게 순종하라. 공경하라.

부모: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너무 심플하지만 이 내용은 큰 파급력이 있다. 심플한 이런 도리들을 흉내만 내도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와 부부의 관계는 지금보다 한결 좋아질 것이다. 방황하는 청소년은 줄어들 것이고, 이혼율도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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