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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스탈린이 김일성을 택한 이유

by 책 읽어주는 아빠 2023. 1. 4.

스탈린, 김일성

 

김일성

 

제2차 세계대전과 소련에 의한 냉전시대가 이러지며 전 세계는 어수선하였다. 그 당시 북한에는 민족주의자 조만식, 토착 공산주의 지도자 박헌영, 연안파의 실력자 김두봉과 무정, 소련파의 허가이가 북한 지도자로 손색이 없었다. 특히 허가이는 소련파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로서 지도자로 준비된 사람이었다. 

 

허가이는 1900년생으로 소련에서 태어나 모스크바대학을 졸업하고 소련 원동지역 변강 공청 조직부장을 지낸 전문 당 일꾼이다. 해방 후 입북하여 1946년 북로당 중앙위 조직부장 겸 상무위원,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노동당 제2서기, 내각부수상을 지낸 후 1953년 의문의 자살을 하였다. 허가이의 별명은 '당 박사'로 해방정국의 북한에서 당 사업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소련파의 총수 역할을 한 그는 평소에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는 신중한 성격이었다. 초기 당 사업을 할 때 김일성은 허가이에게 크게 의지했다. 김일성은 초급 당 위원장 한 번 지낸 일이 없어 당 사업에 대해서는 전혀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미숙한 유치한 김일성에게 정치가로서, 이론가로서, 행정가로서 걸음마를 가르쳐주는 보모와 같은 존재가 바로 허가이였다. 당시 김일성은 소련 지시에 의해 행동했고, 소련 사람이 만든 연설문을 소련파가 번역해준 것을 낭독하는 한심한 처지였다. 소련파의 배치도 일일이 소련군정에서 계획적으로 진행했다. 소련군정 관계자들이 김일성을 장군으로 호칭하면, 소련파들은 김일성을 경멸하는 뜻으로 "대위 장군"이라고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은 33세의 새파란 소련군 대위를 항일 민족영웅으로 둔갑시켜 북한 지도자로 세웠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소련군정 정치사령관 레베데프 소장은 이렇게 말한다.

"당 중앙 스탈린 원수는 동유럽의 공산권 지도자를 선택할 때에도 마르크스 레닌주의 이론가보다 군인 출신을 선호했다. 스탈린이 김일성을 북한 정권의 지도자로 지명한 것은 김일성이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소련군 제88특별정찰여단에서 대대장으로 복무하면서 소련의 명령에 충실했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군인이라고 판단했다. 즉 김일성이 학식과 공산주의 이론을 갖추지는 못했으나, 정치적 소질과 신념이 강한 항일 빨치산 출신이며, 소련에 충성할 것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김일성과는 반대로 토착 공산당 지도자 박헌영은 자신의 정치노선보다 소련의 지시를 따르긴 했으나 나름대로의 공산주의 이론과 철학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늘 원칙과 이론에 근거한 주장을 앞세우는 고집 센 혁명가였다. 때로는 소련 고위 장성들과의 회의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아 그들의 눈 밖에 났다. 스탈린은 박헌영이 이론적으로 준비된 인텔리인 것은 분명하나 코민테른(국제공산당) 활동에 깊이 관여했고, 1928년 극심한 종파싸움으로 해체된 조선공산당으로 종파활동 경험이 많다는 점을 주목했다. 일제하에서 항일투쟁으로 세 차례에 걸쳐 10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하는 동안 일본에 투항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았다.

 

한 마디로 스탈린은 김일성을 똑똑하지 않은 충성된 개로 보았고, 다른 공산주의자들은 똑똑하고 자신의 주장이 있어 개로 활용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것이 악한 자가 사람을 세우는 기준이다. 실력자가 아닌 자신에게 충성하고, 시키면 시키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김일성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일성이 북한의 지도자가 된 것은 단순히 스탈린의 지목으로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 스탈린의 지목 이외의 김일성의 성과는 무엇이 있을까? 

 

서대숙은 이렇게 분석했다.

"김일성의 성공은 소련의 혜택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그 후의 권력의 관리, 운영을 평가한다면 일부는 그 자신의 능력에 의해 획득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역시 가장 중요한 해답의 열쇠는 옛 공산주의자들의 일련의 실패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스칼라피노이정식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김일성이 언제나 과감한 추진력과 실천력을 가진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또 김일성이 이 같은 추진력과 함께 공산주의 지도자에게 극히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무자비하고 잔인한 성격을 겸비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중국 공산주의자들은 이점을 김일성에게서 1930년대에 발견했고, 소련인들은 1940년대에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의 첩인 한성희는 김일성의 눈 밖에 나 1956년 북한과 만주 국경지대의 공장 노동자로 강등되었다.

 

김일성은 자신의 정적이었던 박헌영에게 초기에는 예우를 갖췄다. 1945년 월북한 박헌영이 평양에 나타났을 때, 김일성은 박헌영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극진하게 대접했다. 그의 처 김정숙은 박헌영에게 한국식으로 큰 절을 올려 박헌영은 당황하기도 했다. 그러나 후에 박헌영은 미국 간첩으로 몰려 사상 재검토를 받았고, 박헌영과 함께 월북한 남도당원들이 숙청당하고 박헌영은 마지막으로 숙청당하였다. 

 

김일성은 자신의 항일 빨치산 경력을 앞세워 일반 대중들의 환심을 사는 데 성공했고, 정치적 반대자들을 친일로 몰아 탄압하고, 몰락시키고, 파괴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한 마디로 김일성은 소련공산당 당 중앙과 소련군정 사령부가 자기에게 지시한 38선 이북 지역에 공산화 된 소련의 위성국가를 세운다는 과업을 충실히 수행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 있는 포악성은 정적들을 숙청하는 데 다 드러났다. 임은은 김일성이 명예욕과 허영심이 많으며, 잔인하고 포악한 데가, 교양이 없고 소부르주아적 개인영웅주의자라고 평한다. 그는 다른 모든 공산국가의 독재자와 한 배를 탔던 것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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