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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김일성 그 위대한 신화

by 책 읽어주는 아빠 2023. 1. 3.

4명의 김일성, 3명의 김성주, 그는 누구인가?

 

김일성 김성주

 

대한민국은 참으로 이상한 나라이다.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면 국민의 일부가 이상하다. 과거 김일성이 일으킨 625전쟁과 남북분단, 남로당으로 인한 여러 테러와 폭동, 반란 사건으로 대한민국은 큰 상처와 아픔을 경험하였다. 하지만 그 모든 책임이 김일성이라는 한 사람에게 있음에도 오히려 반공주의로 공산 세력을 물리친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을 욕하고, 독재자 프레임을 씌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 프레임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일부는 김일성은 항일 독립투쟁을 한 민족의 영운으로 찬양하지만, 조선이라는 왕정국가에서 자유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을 건국하여 모든 백성에게 자유를 주어 시민으로 만든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파, 매국노, 미국 제국주의자라고 욕을 하고 있다. 이것이 정상일까? 비정상일까? 이런 역사의 해석이 옳은 것인가? 틀린 것인가?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에서는 오히려 반대의 해석을 한다.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을 공부하여 자신의 나라도 대한민국과 같이 성장하는 나라, 강하고 부유한 나라로 만들고자 노력을 하고 있다. 이것이 객관적인 판단이 아닐까? 주체사상으로 북한에 남은 우리 동포들을 세뇌시켜 거대한 사이비 종교집단이 된 북한. 그 이면에는 김일성이라는 독재자가 있다. 그 김일성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김일성은 두 이름이 있다. 김일성과 김성주이다. 김일성은 '金日成, 金一成, 金日星, 金一星' 4가지의 김일성이 있고, 김성주는 '金聖柱, 金成柱, 金誠柱' 3가지의 김성주가 있다. 어떻게 이름이 이렇게나 많을까? TV에 나오는 사기꾼들이 이름이 많다. 사기를 쳐야하기 때문에 여러 이름을 써서 자신의 과오를 덮으려고 하는 전략이다. 이름이 많은 이유는 김일성 그가 얼마나 거짓된 삶을 살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김일성, 김성주 그의 삶은

본명은 김성주이다.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가 창덕학교 2년, 독립군이 세운 화성의숙 6개월 공부를 한 것 외에 중국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 덕에 중국 국적을 얻었고, 어린시절부터 중화사상을 배웠다. 중국어를 배워 만주 일대에서 한 마적질(강도짓)과 공산당 활동에 도움이 되었고, 중국과 소련에서 활동을 할 때 신임을 얻을 수 있었다. 

 

아버지 김형직은 공산주의자들의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그의 아들이 공산주의자가 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는 그의 어머니 강반석이 어린 세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만주의 공안대장에게 시집을 가면서 공산주의 사상에 물든 것이다. 양부의 지원으로 길림 육문중학에 입학하였고 퇴학 이후 이종락 일파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금 명목으로 강제 세금 징수, 테러와 살인을 일삼았고, 독립운동가 양세봉 장군이 보낸 고동뢰 소대를 몰살하고 도주하였다. 그 후 여기저기 숨어살던 김성주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1933년 9월 22일 중국 구국군 오의성 부대와 동만 공산유격대의 왕청유격대가 합동으로 작전한 동령현성 전투에 양성룡 부대의 일개 소대로 참가하며 공산빨치산 운동에 정식으로 몸을 담았다. 이때부터 항일 빨치산 대원으로 활동하다가 끝까지 살아남아 소련령으로 도주하여 비야츠크까지 간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이 한 명이든 여러 명이든 김일성이란 이름을 가진 인물들의 만주에서의 빨치산 활동 기간은 약 7년이다. 이 기간 동안 김일성이 했다는 항일 무장투쟁은 조국의 광복이라거나 조선 해방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다. 시종일관 만주군의 토벌에 쫓겨 도주, 식량획득을 위한 민가 습격, 약탈, 양민 납치가 거의 모든 활동이었다. 그가 지휘한 부대는 100~200명 선을 넘지 못하는 중대급 규모로서 정규전도 아니고 소규모 단위로 움직이며 빨치산 활동을 한 것이 전부였다.

 

김일성의 공식 비공식 전기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보천보 전투'의 지휘자가 북한 지도자가 된 김형적의 아들 김성주의 작품이라고 한다. 그럼 이 보천보 전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전투란 상대하는 적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당시 보천보에는 대응하는 적이 없었다. 따라서 보천보 전투는 전투가 아니라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다. 100명 미만의 병력으로 대항하는 일본군도 없는  경찰 5명에 불과한 조그만 산골 마을에 나타나 총을 난사하고 방화하고 식량과 금품을 약탈해 간 것에 불과하다. 이것이 김일성의 최대의 업적이라고 한다. 모든 것이 거짓과 조작이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고 소련군이 북한에 진주하여 군정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북한 지역에 공산 위성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내세울 지도자가 필요했다. 평양 주둔 소련군 제25군 사령부는 분위기를 파악해 보니 조선공산당의 지도자 박헌영은 서울에 있었고, 38선 이북 지역에는 믿을 만한 공산당원을 찾기 힘들었다. 그렇게 물색하다 김일성 즉 김형직의 아들 김성주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의 중국공산당 입당과 활동사항, 빨치산 활동 등의 그의 활동에 대해 조사를 하였다. 그 가운데 진짜 항일 빨치산 운동에 공을 세운 또 다른 김일성 장군이 있다는 풍문이 조선 인민들에게 널리 퍼져 있었고 그 김일성 장군이 개선하기를 고대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소령군정 사령부에서 일했던 박길용의 회고에 의하면 젊은 장교들은 '미래의 수령' 만들기 작전을 해야 한다고 지도부에 건의했다. 이 와중에 김성주라는 보천보를 습격하여 유명해진 김일성을 찾아 김일성 장군으로 날조하였던 것이다. 또 스탈린은 1945년 9월 초, 베리아가 추천한 김성주를 모스크바로 불러 크렘린궁 별장에서 4시간 동안 면접을 본 후 즉석에서 "이 사람이 좋다. 앞으로 열심히 해서 북조선을 잘 이끌어가라. 소련군은 이 사람에게 적극 협력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그 해 9월 18일 소련군은 김성주에게 소련군 대위 계급장을 단 군복을 입혀서 평양으로 데려와 조선인민들 마음 속에서 전설의 항일투쟁의 영웅으로 불리던 김일성 장군으로 둔갑시켜 북조선의 수령에 오르게 만들었다. 이런 조작에 의해 김일은 소련의 지령을 받는 소련 위성 공산국가 북한지부장에 불과하였다. 이런 타이틀을 가지고 스탈린을 부추겨 625라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벌였고, 민족이 분단되어 지금까지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북한 내에서는 주체사상을 우리 동포들에게 세뇌시켜 자유를 빼앗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수용소에서 죽이고, 겁에 질린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지금까지 굶겨 죽이는 사이비 종교집단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직도 세계 10대 종교에 주체신학은 그 이름을 올렸다. 이런 북한을 옹호하는 대한민국 내의 시민은 과연 누구의 시민일까? 저런 사이비 종교 집단의 교주로 있는 김일성의 손자 김정은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바른 정신일까? 주체사상에 세뇌된 사람일까? 역사를 바르게 해석해야 그 민족의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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