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자녀 교육법

마태복음 2:19-23

by 책 읽어주는 아빠 2023. 11. 10.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집트에 있던 예수님은 헤롯왕이 죽었으니 이스라엘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인도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유대 지역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유대 지역은 헤롯의 아들인 아킬라오가 왕으로 있었는데, 이 아킬라오는 너무 잔인한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유대가 아닌 갈릴리로 가기로 했죠. 그런데 성경은 또 이 사실을 두고 구약 성경을 이루기 위해 갈릴리로 가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3절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이 말씀을 보면 구약 성경 어디에 “메시야가 나사렛에서 자랄 것이다.”라고 적힌 것 같지만, 구약 성경 어디에도 “나사렛”이라는 단어는 쓰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왜 나사렛일까? 일반적인 해석은 이사야 11:1으로 해석하는데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기에 나사렛이라는 단어는 없는데 왜 이 말씀으로 나사렛과 연결을 시킬까? “한 가지”가 나온다고 하죠. 이 가지는 “네체르”라는 히브리어 단어인데, 나사렛이 이 네체르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네체르는 그냥 가지가 아니라 새로 나온 가지를 뜻합니다. 

새로 나온 가지는 약해요. 손만 대면 부러질 것 같죠. 이와 같이 나사렛도 이스라엘에서 약한 지역이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지역이었죠. 그래서 요한복음에서 빌립이 예수님을 만나러 가자는 요청에 나다나엘이 뭐라고 대답을 합니까? “나사렛이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대답했죠. 그 정도로 나사렛은 이스라엘에서 보잘 것 없고, 멸시와 천대를 받는 지역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님은 갈릴리 지역, 그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나사렛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갈릴리는 이스라엘 북쪽 끝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자주 침략군의 침략을 받던 곳이 바로 갈릴리 지역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연평도 같은 곳이 이스라엘에서 갈릴리인 거죠. 하나님의 심판으로 가장 취약한 이 지역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먼저 임하겠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데요. 

이사야 9:1-2 ‘[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스불론과 납달리 땅이 바로 갈릴리인데요. 하나님은 이 갈릴리 지역에 전에는 멸시를 당하게 하셨데요. 그러나 후에는 영화롭게 하시겠데요. 빛을 비치게 하시겠다고 예언하고 있어요. 

예수님이 바로 이 말씀을 이루셨죠.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 갈릴리에서 자라셨습니다. 그리고 갈릴리 지역에서 가장 먼저 사역하셨고, 제자들을 부르셨고, 가장 많은 기적을 베푸시고, 말씀을 가르치셨어요. 예수님의 3년간의 사역 대부분은 갈릴리 지역에서 하셨습니다. 갈릴리를 기점으로 남쪽으로 사마리아, 유대 지역을 가셨고, 북쪽으로 두로와 시돈까지 다니셨죠. 갈릴리에서도 예수님 사역본부라고 불리는 곳이 가버나움인데요. 예수님은 주로 이 가버나움에 사셨어요. 제자들이 예수님이 안 보여 찾으러 간다면 가버나움으로 갔을 정도죠. 이처럼 예수님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취약하고, 고통 받은 지역인 갈릴리에서 가장 많은 구원의 빛을 비추신 거죠.

하나님은 이와 똑같은 방법을 구원 얻을 사람에게도 적용시키는데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 한 사람이 있어요. 하나님이 이 사람을 구원시키기 위해 가장 먼저 무엇을 하실까요? 그 사람의 죄를 드러내십니다. 죄 중에서도 그 사람이 가장 많이 짓는 죄, 가장 심각한 죄를 깨닫게 하셔서 그 죄로 고통 받게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께 나오게 만드시죠. 결국에는 그 죄를 회개하여,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도록 만드십니다. 

성경에서 회개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베드로를 예로 보겠습니다. 베드로는 자신감이 높았던 사람입니다. 자신의 의로움으로 예수님을 따랐던 인물이죠. 예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소리쳤고, 실제로 그렇게 살았어요. 군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오자 칼을 들고 싸웠고, 종의 귀를 잘랐죠. 그런데 예수님이 잡히시자 그의 자신감과 의로움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결국에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죠. 베드로는 이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을 의지했던 사람에서, 이제는 예수님만 의지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얼마나 예수님을 의지했던지 자기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조차도 예수님이 아신다고 고백했죠. “나를 사랑하냐?”는 예수님의 마지막 질문에는 근심하며 대답하죠. “주님이 모든 것을 아십니다.” 이게 무슨 말이에요? “나보다 나에 대해서 더 잘 아시는 분이 주님이신데, 왜 그걸 나에게 물으십니까?” 이런 뜻이죠. 베드로는 지금 오직 예수님만 믿고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베드로 외에도 간음하다 잡혀 온 여인에게는 그 음란함으로 회개시켰죠. 돈을 우상으로 여긴 세리장인 삭개오에게는 자신의 우상인 돈을 포기하게 만드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충성심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셔서 회개시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인 이스라엘에, 가장 약한 지역인 갈릴리에서 자라나셨고, 구원 사역을 하셨듯이, 한 사람에게 찾아오실 때도 그 사람의 잘난 것으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가장 못난 부분인 죄를 가지고 구원 사역을 이루고 계십니다. 이게 바로 우리 예수님의 방법이에요.

그러니 우리 성도는 예수님께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야 하겠죠.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해요. 고린도후서 12:9-10 ‘[9]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이 세상 사람들은 스스로를 강하게 보이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공부하고, 돈을 벌고, 운동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약하면 약할수록, 나의 죄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오히려 강해집니다. 내가 강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를 받아 강해지는 거죠.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약한 것을 꼭꼭 숨기는 사람이에요. 부끄러우니 숨기는 거겠죠. 그러나 믿는 자는 숨기는 자가 아니라, 나의 약한 것, 부끄러운 것, 죄 된 모습을 예수님께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치료하고,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취약한 갈릴리에 가장 먼저 구원의 빛을 비추셨듯이, 우리의 가장 연약한 곳을 통해 구원의 빛을 비추실 겁니다. 그 예수님께 보여드려야 해요. 그래야 예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728x90

'독서·자녀 교육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태복음 3:7  (0) 2023.11.12
마태복음 3:1-6  (0) 2023.11.11
마태복음 2:13-18  (0) 2023.11.03
마태복음 2:1-12  (0) 2023.11.02
마태복음 1:18~25  (1) 2023.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