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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자녀 교육법

나르시시스트 대처법

by 책 읽어주는 아빠 2022. 11. 18.

나르시시스트 대처법, 피하는 방법

 

 

 

나르시시스트는 주로 사회적인 지위가 높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이 원하는 일, 꿈, 이상을 찾아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이 사회를 동물의 왕국과 같이 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동물의 왕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강해야 한다. 나르시시스트는 이런 시각으로 이 사회와 사람을 보기 때문에 자신이 잡아먹히지 않고, 강해져서 지배하려고 하는 욕구가 강하다. 그 결과 나르시시스트는 사회에서 지위가 높다. 회사에서는 부장, 이사, 사장, 교회에서는 목사, 선교사 등의 지위를 가져 그 속에서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고 한다. 물론 이런 직급은 지위가 아니라 포지션일 수 있고, 역할일 수 있다. 특히 교회에서 목사, 선교사는 역할일 뿐이다. 오히려 성도를 섬기는 서비스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는 모조건 지위로 본다. 그래서 그 지위를 쟁취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한다. 어느 엄마는 갓난아기가 있는데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과정을 거쳐 학위를 땄다. 이 엄마는 나르시시스트이다. 아기를 데리고 학교에 가기도 하고, 아기를 집에 방치하고 학교에 가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유아학대를 마치 자랑인 것처럼 웃으면서 말한다. 100% 나르시시스트이다. 정상적인 사람은 이러지 못한다. 갓난아기를 돌보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지, 아기를 학대하면서까지 학위 공부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르시시스트는 가능하다. 그 학위가 자신의 지위를 올려주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럼 나르시시스트의 먹이가 되는 사람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똑똑하고, 상대방의 감정에 잘 공감해 주고, 착한 사람이 먹이가 되기 쉽다. 이런 사람은 상대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든 자신이 조금 양보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상대를 봐준다. 참는다. 손해를 본다. 그러면 나르시시스트의 먹이가 되기 딱 좋다. 상대가 정상적인 사람인 경우에는 이런 대처법이 너무 좋다. 인격적이고, 상대를 존경하고, 원만한 관계를 만들어 준다. 비뚤어진 성격이라도 이런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 하지만 그 상대가 나르시시스트이면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다. 무시하고, 화내고, 이용한다. 그러면 처음에는 그러려니 생각하다가, 시간이 흐르면 피곤해지고, 정신적인 쇼크를 받고, 몸도 피곤해 진다. 사람이 무섭고, 소심해지고, 두렵기까지 한다.

우리나라 사람 대다수는 이런 성향의 사람이 많을 것이다. 똑똑하고, 상대방의 감정에 잘 공감하려 하고, 착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 말이다. 가정교육을 잘 받아서 그렇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에게는 이런 식의 관계성을 가진 사람은 먹이가 되기 딱 좋은 사람일 뿐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이런 식으로 대처하면 안 된다. 나르시시스트를 대처하는 방법 중 최고의 대처법은 관계를 끊는 것이다. 보지도 않고, 연락도 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대처법이다. 내 눈에서 사라지게 만들면 최고다. 하지만 직장이면 말이 달라진다. 내 밥줄이 달려있는데 그 나르시시스트 한 사람 때문에 그만두기에는 너무 아깝다. 그럼 다른 대처법을 없을까? 그 대처법에 대해서 한 번 살펴보자.

 

강인한 마음 가지기

나르시시스트의 먹이들은 착하다. 이 착한 성향은 너무 좋다. 하지만 잘못된 착함인 경우가 많다. 잘못된 착함이란, 무조건 착하게 대하는 것을 말한다. 상대가 나의 기분을 망치면 착하게 대하면 안 된다.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화내고, 지시하고, 가스라이팅을 하면 그 상대는 내 사람이 아니다. 내 사람이 아니면 그럼 누굴까? 나에게 손해를 끼치는 사람이다. 나에게 해로운 사람이다. 이런 사람에게 착하게 대한다? 그건 이상하지 않은가?

특히 사회 초년생이 이런 경우가 많다. 자신은 부족하고, 모르기 때문에 많이 배워야 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상사의 꾸지람을 나를 가르치는 행위로 이해하려고 하고, 나의 시간을 빼앗고, 노동력을 갈취해도 좋게 생각하여 당하기만 한다. 이건 착한 것이 아니라 바보짓을 하는 것이다. 회사뿐만 아니라 친구 사이에도, 부부 사이에도 이런 관계가 있을 수 있다. 그건 바보짓이다. 착한게 아니다. 이걸 명심해야 한다.

상대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화내고, 지시하고, 가스라이팅을 하면 그 상대는 내 사람이 아니라고 여기고, 걸러야 한다. 그 사람의 말에 착하게 대할 필요가 없다. “내가 왜 그래야 하냐? 나는 그러기 싫다. 하지 않을 거다.” 나르시시스트는 내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나르시시스트의 말이 귀기울일 필요는 없다.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가 끊어져도 되니 무시하고, 내가 판단한 그 결정을 지켜야 한다. 이러긴 쉽지 않지만 한 번 해보라. 그 사람을 보지 않을 작정을 하고 해보라.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포커페이스

도박을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포커페이스다. 상대가 나의 얼굴 표정을 읽지 못하도록 어떤 감정의 표현도 하지 않는 것이 포커페이스이다. 이 포커페이스는 도박할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나르시시스트를 대할 때도 필요하다. 만약 내 상사가 나르시시스트이면 그 상사의 지시에 모조건 포커페이스를 하여 대하라. 농담을 하든, 화를 내든, 어떤 말을 할 때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대답을 짧게 하라. “네, 아니요, 알겠습니다.” 설명도 하지 말고, 말을 길게 하지 말고, 친한척도 하지 말고, 나의 감정(슬픔, 기쁨, 감사, 화남 등)도 내비쳐서는 안 된다. 절대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

그럼 나르시시스트는 이런 나의 포커페이스에 어떤 생각을 할까? 나르시시스트는 사람과의 관계를 상하 관계, 강한 자와 약한 자의 관계로만 이해한다. 그럼 약한 자를 만나면 이 약한 자는 나에게 약한 척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나에게 웃어줘야 하고, 웃기지도 않는 농담을 해도 억지로 웃어줘야 한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상사에게 이렇게 하기 때문에 나의 부하 직원도 나에게 이렇게 하길 바란다. 그런데 포커페이스를 하며 말도 섞지 않는다? 생각이 깊어질 것이다. “얘가 왜 이러지? 약한 자가 아닌가? 내 먹이감이 아닌가?”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얘가 직급은 나보다 낮지만 강한 자인가?”라고 생각이 바뀔 것이다. 그러면서 나르시시스트는 나를 경계할 것이고, 먹이감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이런 포커페이스를 보이면 처음에는 격한 반응이 올 수도 있다. "뭐야! 설명을 하라는데 뭐하는거야! 나랑 장난쳐! 웃을 줄도 몰라!?" 그럼 뭐라고 답해야 할까? "아닙니다." 이 한 마디면 된다. 다른 말 하지 마라. 절대로. 처음에 격한 반응이 오지 다음에는 포커페이스인 당신의 눈치를 볼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농담을 던져 보라. "과장님도 꼰대시네요." 이 말을 듣고 화를 내면 "꼰대라는 말듣고 화내면 꼰대라는데~ㅎㅎㅎ" 이제 상황은 역전되었으니 축하한다. 나르시시스트가 나이가 많든, 직급이 높든 이제 내 아래로 두면 된다. 상대의 말은 무시하고, 나의 말만 하면 된다.

 

격한 반항

아는 목사님이 나르시시스트가 담임목사인 교회에 부교역자로 들어갔다. 나르시시스트 목사는 회의 시간을 9시라고 했는데 8시부터 회의 테이블에 앉아 있다. 그럼 부교역자들은 몇 시에 와야 하나? 최소 7시 50분에 와야 한다는 소리다. 아니면 약속 시간을 8시라고 하면 되는데, 그러면 출근 시간을 어기는 것이 되기 때문인지, 그냥 그 시간에 나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부교역자들을 조련시키는 것이다. 회의 시간 뿐 아니라 약속을 잡으면 늘 그런 식으로 부교역자들을 당황시켰다. 나르시시스트 담임목사는 이것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꼬투리를 잡고 야단치고, 화내고, 면박을 준다. 그리고 교회 교역자는 월요일이 쉬는 날인데 그 날도 일을 시키고, 불러낸다. 부교역자의 아내는 보통 교회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보통 갓난아기, 유치원생, 초등학생 정도의 자녀를 두기 때문에 가정에서도 바쁘다. 그래서 정상적인 교회에서는 담임목사가 부교역자 아내들을 좋은 레스토랑에 불러 맛있는 점심을 사주고 본인은 빠지는 이런 배려를 보이는데, 이 나르시시스트 담임목사는 아내들까지 불러내서 일을 시키는 것이다.

함께 교회 일을 하는 동역자가 아니라, 자신의 노예로 몇 가정을 부려먹고 있는 것이다. 부교역자로 들어간 목사님은 이런 나르시시스트 담임목사의 행패를 참다 참다 회의하는 날 소리를 쳤다고 한다. “일이 많은데 또 쉬는 날 불러서 일을 시키십니까!”라고 말이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갔다고 한다. 그 다음 날 정상적으로 출근을 했는데 나르시시스트 담임목사는 이 목사님 눈치를 보고, 그 이후부터는 그런 강압적인 성향을 비추지 않았다고 한다. 화내거나 면박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보는 것이 나르시시스트이다. 나에게 부당하게 대하면 격한 반응으로 응수해야 나르시시스트의 가스라이팅은 그치게 된다.


위의 대처법들은 가장 기본이 되는 대처법이다. 한 번 사용해 보시면 다음은 쉬울 것이다. 힘없고, 백없으면 소심해지기 쉬운데 약한 마음 가지지 말고, 강한 마음으로 나르시시스트를 대처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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