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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공교육이 아이를 바보로 만드는 과정

by 책 읽어주는 아빠 2022. 10. 9.

공교육이 아이를 바보로 만드는 과정을 알려주는 책

* 공교육 수업 시간을 보라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을 토막 내어 종소리만 울리면 수업을 마치도록 만든다. 이런 학교 교육, 공교육은 아이들 스스로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을 방해할 뿐이다. 이는 사람이 집중을 하는 과정을 다 무시한 체 기계적인 방법을 사람에게 사용한 것으로, 이런 과정으로 공부를 하면 절대 집중할 수 없고, 공부하고자 하는 의욕도 가질 수 없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라. 집중을 한다. 엄마가 말려도 더 하려고 한다. 배가 고프지도 않다. 왜 그럴까? 스스로 발견한 것으로 스스로의 통제력을 가지고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노는 것도 학교 공교육식으로 놀리면 되겠다고 생각하는 어른이 있다. 그러면 아이들은 재미없어 한다. 비싸고, 화려한 장난감을 주면 더 좋아할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 장난감을 몇 번 만지고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스스로 발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 머리 속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무런 통제도 하지 않고,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장소에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고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것이다. 해변가의 모래 사장에서 아이들은 하루 종일 놀 수 있다. 친구 몇 명과 함께 놀이터에서 하루 종일 놀 수 있다. 억지로가 아닌 재미있어 하면서 말이다.

 

 

* 레마르크는 고전이 된 '서부 전선 이상 없다.'에서 1차 세계대전은 교사들의 속임수 때문에 일어났다고 했지요. 또 유명한 기독교 사상가 본회퍼는 2차 세계대전은 학교교육이 낳을 수밖에 없었던 결과라고 했습니다. 본회퍼가 한 말은 "프러시아식 학교 교육이 스스로 생각하는 이성 능력을 없애버렸다." 프러시아식 학교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자기들이 한 일이 옳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교사가 가르쳐 줄 때까지 기다리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프러시아 학교 교육에서 강조하는 원칙이 정부야말로 아이들의 진정한 부모라는 것, 다시 말해 국가가 가정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공교육은 프러시아에서 시작되었다. 일본은 그 공교육을 수입하였고, 조선에 이식시켰다.

 

 

* 학교교육은 미국에서 가장 큰 하나의 사업체가 되었고, 국방부 다음으로 가장 큰 계약체결자이다. 어마어마한 돈이 바로 공교육, 즉 학교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수많은 사람의 밥줄이 학교에 있다. 그러면 이 세력을 줄이거나, 없애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많은 교육자들이 학교 교육, 공교육, 주입식 교육이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 독립적인 학습방법, 지역사회에서의 봉사활동, 모험과 경험, 충분한 개인 시간과 혼자 있기, 온갖 종류의 견학과 견습, 이것들은 모두 진정한 학교제도의 개혁을 위한 강력하고 값싸면서도 효과적인 방법들이다.

 

* 학교에서의 훈련을 교육이라 부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학교와 같은 조직은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젊은이들이 가진 시간의 절반을 가둬놓음으로써, 같은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을 저희들끼리만 묶어놓음으로써, 일의 시작과 끝을 종소리로 통제함으로써, 여러 사람들에게 똑같은 주제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등급을 매김으로써, 그리고 그밖에도 수십 가지 천박하고 우매한 방법으로 학교라는 조직은 사회의 생명력을 훔쳐내고 추악한 기계론만을 심어놓는다. 그런 조직 속에서 인격을 손상당하지 않고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걸 서태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노래 교실이데아에서 그는 이렇게 작사를 하였다. “매일 아침 일곱시 삼십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똑같은것만 집어넣고 있어 막힌 꽉 막힌 사방이 막힌 널 그리고 우릴 덥썩 모두를 먹어삼킨 이 시꺼먼 교실에서만 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

 

 

* 젊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데 보수를 받게 되면 결국 학교라는 조직은 학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사를 위해 존재하는 조직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 아직까지도 아이들에게 주입식으로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교육, 자율성과 창의성을 말살시키는 교육을 말이다.

 

 

*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교육은 중앙집권 하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획일화된, 압력적인 교육만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교육을 받게 된 학생들은 생각을 하지 못하는 단순한 사고의 인간으로만 자라게 된다는 것이다. 교육도 자유시장에 맡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에게 맞는 교육을 시키라는 것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그 사회 속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교육이 더 생각하는 교육이고, 획일화되지 않는 교육이라는 것이다. 읽고, 쓰고, 셈하는 교육은 100시간이면 충분히 교육시킬 수 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이 있다. 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본적인 상식은 어떻게 배우나? 사회에서나 자유 시장의 원리로 배운다면 역사, 과학, 지리, 전문적인 수학 등을 배우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학교라는 제도 안에서의 개혁이 더 맞지 않을까? 예를 들어 초등학교 저학년에게는 읽기, 쓰기만 시간을 정하지 않고 가르친다든지 하는 방식의 전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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