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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자녀 교육법

마태복음 3:16-17

by 책 읽어주는 아빠 2023. 11. 18.

칭찬 받으신 예수님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늘에서 말씀하세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나님은 예수님께 하셨던 이 말씀을 예수님을 믿는 성도에게도 하신다고 했죠.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께 이런 칭찬을 들을 수가 있어요. 믿음은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나의 하나님으로 믿는 것을 말하죠. 이거면 충분해요. 믿음에 무엇을 더하면 그건 믿음이 아니죠. 로마 카톨릭처럼 믿음에 나의 노력을 더하는 것은 믿음을 흐리게 만들어 버려요. 그래서 로마 카톨릭에 있는 사람 중에는 자기가 구원을 받을지, 받지 못할지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이 많아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거예요. 나의 노력이나 다른 어떤 조건도 붙어서는 안 되요.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어요. 그 함정은 바로 시간인데요.

 

보통 성도가 생각하는 믿음은 이런 식이에요.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말 한 마디로 믿음을 정의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믿음 이후의 시간은 빼버리는 거죠. 이런 생각을 하는 성도는 예수님을 믿고 바로 죽는 것이 제일 나아요. “예수님이 나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무덤에서 부활하셨어. 나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명을 받은 의인이야.이 믿음을 가지고 1분 뒤에 죽으면 가장 좋아요. 왜죠? 믿음을 가지고 죽은 거잖아요. 성경에 이런 사람이 있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그 옆에서 죽은 사람이 있어요. 2명인데 한 사람은 예수님을 비방했어요. “네가 그리스도면 우리도 구원해봐라.” 다른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는 우리 죄로 죽지만 예수님은 옳은 일만 하셨어.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생각하소서.예수님은 이렇게 말한 사람을 보시고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죄인은 지금 어디 있죠? 낙원에 있어요. 예수님과 함께 있을 거예요.

 

말 한 마디 한 것을 믿음으로 정의하는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간 이 죄인을 가장 좋아할 거예요. “한 번의 믿음의 고백만 하면 돼. 매주 일요일 교회 가서 1시간 동안 가만히 않아 있잖아. 나는 구원받은 성도야.이걸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거죠. 믿음을 아주 심플하게 만들어 버려요. 어떤 행위도 없어요. 생각 한 번이 믿음이라고 정의해 버린다는 거죠. 이렇게 생각하는 성도는 의외로 많아요.

 

이와 반대로 어떤 사람은 교회 나오면서 늘 걱정을 하는 사람이 있어요. 무슨 걱정을 할까요?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이렇게 하셨다고? 하나님이 이 땅에 사람으로 태어나신 것도 모자라, 죄인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죄인의 죄를 죽이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고? 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다 예수님처럼 살다가 예수님처럼 죽었다고? 그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다 이렇게 살아야 되잖아. 나는 이렇게 못해. 나는 예수님 못 믿겠어. 불가능해.그리고 진짜 믿음을 포기하고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저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고민을 했던 적이 있는데요.

 

믿음을 심플하게 만든 사람이나, 믿음을 지키기가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다 사람의 생각일 뿐이에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의 생각, 자신의 결심, 자신의 노력으로 예수님을 믿은 게 아니죠. 성령의 인도를 잘 따라서 그렇게 산 것이지, 자기 노력이 아니었어요.

 

그러나 우리는 나의 믿음에 대해 고민을 해봐야 되요. 믿음을 아주 심플하게 여겨서 어떤 행위도 하지 않거나, 어떤 변화도 없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점검을 해봐야 하는 믿음이에요.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으면 죄인에서 의인으로 바뀌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마귀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식으로 바뀐 거예요. 그런데 바뀐 그 사람의 삶에 어떠한 변화가 없다고요? 그럼 그 사람은 의인이 아닌 거예요. 하나님의 자식이 아닌 거죠.

 

고아가 있어요. 그 고아는 가만히 있으면 누가 먹을 것을 주지 않아요. 따뜻한 방에 데려가 주지도 않아요. 거리에 나가 먹을 것을 달라고 구걸해야 조금의 음식을 얻어먹을 수 있어요. 옷도 누가 버린 것을 주워야 입을 수가 있어요. 춥지 않은 장소를 찾아 오늘 밤도 얼어 죽지 않기를 바라면서 잠을 자야 되요. 그러던 어느 날 왕이 고아 옆을 지나갔어요. 그 고아가 불쌍해서 양자로 삼고 왕궁으로 데려왔어요. 따뜻한 물에 깨끗이 씻기고, 왕자의 옷을 입히고, 왕이 먹는 음식을 함께 먹고,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자요.

 

고아였던 이 왕자가 1년 뒤에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아직도 음식을 구걸할까요? 남이 입다 버린 옷을 찾으러 다닐까요? 아니겠죠. 고아의 삶에서 왕자의 삶으로 완전히 바뀌는데 걸리는 시간은 일주일이면 되요. 일주일만 지나면 신하에게 명령을 하겠죠. “신하야. 이 음식은 맛이 없다. 다른 걸 가져와라. 오늘은 말을 타야겠다. 내 말을 가져와라.” 이 고아가 왕자가 된 것은 우리 죄인이 의인이 된 것과 똑같아요. 그런데 예수님을 믿어서 의인이 되었다고 하는 성도가 믿는다는 생각 외에 바뀐 것이 전혀 없어요. 이 사람의 믿음은 진짜일까요? 가짜일까요? 가짜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에 함정이 시간이라고 했. 이 시간이라는 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옆에서 함께 죽은 죄인처럼, 예수님을 믿고 바로 죽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도 50년은 더 살아야 된다는 말이에요. 이는 내가 의인으로서 50년 동안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겠죠. 만약 바뀐 모습이 없이 살아간다면 그 사람이 말하는 믿음은 거짓말이 되요. 그래서 야고보서에는 뭐라고 그러죠? “행하지 않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가짜다. 거짓말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하나님은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인색하고, 까다로운 사람을 성도라고 하지 않으세요. 이런 사람이 만약 성도라고 한다면 이보다 더 터무니없는 말은 없을 거예요. 물론 사람은 죄를 가졌기 때문에 완전히 교만하지 않을 수 없고, 완전히 이기적이 아닐 수 없어요. 하지만 성도가 되었다면, 예수님을 믿어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했다면, 나의 옛사람과 현재의 나를 비교하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어야 하는 것이 맞겠죠. 이제는 죄를 습관적으로 짓는 죄인이 아니라, 실수로 죄를 짓는 의인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죄를 사랑하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해요. 나만 위하는 삶을 사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하겠죠.

 

내가 도둑이 아니고, 싸움꾼이 아니고, 사기꾼이 아니고, 알콜중독자가 아니고, 거짓말쟁이가 아니고, 욕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성도의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에요. 이런 것들은 예수님 안 믿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또 속담에 이런 말이 있어요. “감나무 밑에 누워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린다.감을 따는 것도 귀찮아서 언제 떨어질지도 모르는 감을 누워서 입만 벌리고 있는 게으른 사람이라는 거죠. 성도 중에서도 이런 게으른 사람이 많아요. 이런 성도는 은혜의 말씀을 들려줘도 집에 가면 그 은혜가 없어요. 왜죠? 게을러서 은혜를 예배당에 놔두고 왔거든요. 이런 게으른 성도의 특징이 있는데요.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원한대요. 은혜 받기를 원하고, 헌신하기를 원하고, 믿음이 자라나기를 원해요. 하지만 은혜 받으려는 행동이 없어요. 헌신하는 실천이 없죠. 믿음은 계속 잃어버려요. 주님은 구하는 자에게 주시겠다고 하셨어요. 찾는 자에게 찾게 하시겠다고 하셨어요. 두드리는 자에게는 열릴 것이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구한 것이 없고, 찾은 것이 없고, 열리지 않았다면, 이 사람은 예수님께 구하지 않았고, 찾지 않았고, 두드리지 않았다는 확실한 증거겠죠.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이 칭찬의 말씀이 나에게도 하시는 말씀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예수님을 믿어야 돼요. 이 믿음은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나도 예수님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살 때, 그 믿음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이 될 수 있어요. 예수님처럼 사랑이 많고, 예수님처럼 겸손하고, 예수님처럼 헌신적이고, 예수님처럼 용서하고, 예수님처럼 화해하고, 예수님처럼 자비롭고, 내가 아닌 이웃을 위하는 삶을 살아내는 그 사람이 믿음을 가진 성도라고 칭찬을 받을 수 있어요. 이는 나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을 받은 성도만 가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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