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자녀 교육법

어떻게 구제를 할까?

by 책 읽어주는 아빠 2022. 12. 14.

기독교 구제, 구제하는 방법

 

 

 

교회에서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혹은 선행을 베풀기 위해서 구제를 한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을 찾아 물건이나 식사를 제공하고, 사진 찍고, 돌아와 "우리교회는 이런 선한 일을 했어요. 우리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도와줬어요. 우리는 말씀에 순종했어요."라고 자랑한다. 생각을 넓혀보라. 이런 일은 대기업도 하고, 구청, 시청에서도 한다. 그들은 더 값진 것을 주고, 사진 찍고, 돌아와 회사 홈페이지에 사진 올려 회사의 선행을 자랑한다.

 

받는 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교회와 회사가 뭐가 다를까? 다른 건 딱 하나. 전도의 말을 듣고, 같이 눈감고 기도 들어주는 것이다. 나머진 다 똑같다. 받는 자는 누가 더 성가실까? 교회가 더 성가시다. 받는 것과 하는 것은 똑같은데 교회는 긴 말을 들어야 하고, 기도할 때 눈도 같이 감아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제는 뭘까? 회사도 할 수 있고, 관공서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을 구제라고 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과 함께 하신 공생애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지신 그 죽음을 통해 온 인류는 구제를 받은 것이다. 그런데 그 은혜를 입은 교회가 구제를 하는데 한 번의 혹은 여러 번의 이벤트를 하고 있다. 세상은 이런 교회를 보고 비웃는다. "그건 나도 하고 있다."

 

예수님이 사람이 되셔서 사람과 함께 하셨듯이 교회도 가난한 자가 되어 가난한 자와 함께 하는 것이 구제의 시작이다. 가난한 사람이 남이 아닌 나의 가족으로 여기면 이벤트성 구제를 할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다. 가난한 자의 생활 전반에 대해서 알 것이다. 무엇이 필요한지, 부족한지를 알고 도울 것이다. 신분증은 있는지, 가족은 있는지, 어떤 병을 지나고 있는지, 알콜 중독인지, 정신 질환은 있는지, 괴롭힘은 당하는지 등등의 기본적인 사항도 알지 못한 체 '너는 가난하니까 이게 필요할거야. 배고플거니까 밥 줄게. 내가 줬으니 나의 목적인 복음을 들어.' 이렇게 교회가 자기중심적으로 이웃을 돕게 되면, 그 가난한 사람도 교회를 자기중심적으로 대할 것이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로 볼 것이다.

 

그래서 구제는 어렵다. 구제는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번 찾아가서 사진 찍고 돌아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아끼는 가족을 생각해 보라. 내 자식에게 밥을 먹이고, 놀아주고, 교육시키는 게 어렵나? 쉽다. 돈도 많이 필요 없다. 쌀 조금 더 씻으면 되고, 숟가락 한 세트 더 놓으면 된다. 시간만 조금 더 내면 된다. 대단한 무엇을 주지 않아도 된다. ,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하는 사랑이 필요하다. 교회도 이러한 사랑을 가지고 가난한 자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들을 남으로 여기고 만나면, 그들도 교회를 남으로 여긴다. 반대로 가족으로 여기면, 그도 교회를 가족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면 복음 듣지 말라고 해도 듣는다. 교회 오지 말라고 해도 나온다. ? 가족이니까.

 

예수님의 사랑이 바로 이런 사랑을 하셨다. 인간의 죽음을 불쌍히 여기셔서 우셨다. 죄를 짓는 사람을 보고 안타까워 하셨다.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고, 가족이 되셨다. 함께 먹고, 함께 생활하셨다. 오래 참으시며 사랑하셨다. 이것이 예수님의 방법이었다. 오늘날 우리 교회도 예수님을 닮아 구제를 할 때, 이런 사랑을 전해야 하지 않을까? 인격적인 교제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벤트를 하는 것은 구제가 아니다. 그들의 필요도 모르면서 내가 생각하는 필요만 주는 것은 구제가 아니다. 이런 것은 동정이라고 하지 구제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구제해야 할까?

 

 

그들의 필요를 알아야 한다.

보통 가난한 사람에게 물질적인 것만 주면 된다고 여긴다. , 라면, 캔 음식, 김치 등등을 주면 할 일 다했다고 여긴다. 물론 음식을 주면 고마워하고 잘 먹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요즘 대한민국에서 아무리 가난하다고 해서 굶는 사람이 있을까? 없다. 노숙자라도 먹기 싫어 안 먹지 없어서 못 먹는 사람은 없다. 그럼 가난한 사람들은 무엇을 원할까? 가족을 원한다. 지속적으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사람, 자신의 못난 부분을 용납하고 관계할 사람 말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왜 가난할까? 가정이 불완전해서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많다. 편부모, 알콜 중독 부모, 학대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들이 가난해질 확률이 높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밥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심과 관계를 맺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야 마음의 상처는 아물고 회복이 일어난다.

 

 

나에게 있는 좋은 것을 줘야 한다.

구제한다고 옷, 신발, 물품을 기부하라고 하면 내가 쓰지 않는 것, 가지고 있는 것 중 나에게 필요 없는 것, 버릴 물건을 구제품으로 내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라. 남이 필요하지 않아 쓰지 않는 것을 나는 필요할까? 나는 쓸까? 남이 버리고 싶은 물건을 나는 버리고 싶지 않을까?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주는 물건은 남도 싫어한다. 가난하다고 쓰레기 같은 물건을 좋아할 것이라는 착각은 버려야 한다. 그런 물건을 받으면 기분 나쁘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셨다. 다 주신 것이다. 예수님의 일부나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을 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부를 주신 것이다. 우리는 구제를 할 때, 예수님처럼 나의 전부를 주는 것은 못할지언정 내가 가지고 있는 쓰레기는 주지 말아야 한다.

 

예전에 어느 곳에서 구제품을 받았다. 4박스가 왔는데 다 버렸다. 자기 집에서 버릴 것만 모아서 보낸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강남에 사시는 권사님은 자신의 사비로 좋은 옷을 사서 가난한 분들에게 옷을 보내셨다. 그 옷은 이 분들이 지금까지 입어 본 옷 중에 가장 비싸고 예쁜 옷들이었다. 이런 선물을 받으면 사람은 감동을 받는다. 이런 옷은 구제품이라 여기지 않고 값진 선물로 여기게 된다. 감동이다.

 

 

구제는 내가 나의 것을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능력이 되면 남에게 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것은 구제가 아니다. 나의 것을 주는 사람은 상대방을 을로, 나를 갑으로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너는 내가 주는 것을 받는 사람이야.”라고 여기면 갑과 을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생긴다. 나의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이 구제가 아니라, 나에게 있는 하나님의 것을 주는 것이 구제이다. 구제를 정말 잘 하는 사람은 어떤 말을 하는지 아는가? 이런 것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면 이렇게 말한다.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말 뜻을 이해하는 사람은 구제에 대해서 조금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구제는 내가 가난해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 구제 받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 고아, 과부이다. 돈 벌 아무런 능력도 없는 사람을 말한다. 그럼 구제를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입에 풀칠 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은 구제 받는 사람이 아닌, 구제하는 사람에 속한다. 구제는 내가 나의 것을 남에게 주는 행위가 아니라, 나에게 있는 하나님의 것은 가난한 자에게 나누는 행위이다.

728x90

'독서·자녀 교육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혼사유는 단 한 가지야!  (0) 2022.12.22
자녀 교육의 기초(AI가 쓴 글)  (1) 2022.12.19
기도 응답의 예  (1) 2022.12.13
나르시시스트의 대화  (0) 2022.12.10
나르시시스트 부모  (0) 2022.12.08